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미군 (문단 편집) === 총체적 기강 해이 === 베트남 전쟁 당시 대다수의 미국 군인들은 술, 마약, 섹스에 중독된 채 전투에 참전했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에 나오는 사례를 보면 당시 [[미군]]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밤중에 술에 질펀하게 취한 연대장이 휘하 소대장에게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찰리]] 몇 놈 잡아와"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것도 오밤중에 밀림 깊숙히 들어가서. 이에 소대장 브로일스 중위와 병사들은 연극을 했다. '''나뭇가지도 꺾어오고, 물도 그릇에 떠와서 [[무전기]]로 나무를 밟는 소리를 내고, 나뭇가지를 꺾으며 숲을 지나는 것처럼 들리게 하며, 물을 첨벙첨벙 치면서 강물도 건넌다고 [[가라|무전기로 뻥을 쳐가면서 1시간 넘게 보고했다.]]''' 취한 연대장은 속아넘어갔고 나중에 그냥 잠을 자버렸는데, 다음 날 그 연대장은 그런 명령을 내린 걸 전혀 기억 못하더란다. >The normal problems of red-blooded Americans posted in a tropical war zone—sex, alcohol, madness—multiplied in Vientiane, most often at a nightclub called the White Rose. Lilley recalled the day that “one of our senior CIA officers briefed a visiting congressional delegation on the secret war up-country. That evening the delegation was taken to the White Rose for exposure to nightlife in Vientiane. >Members of the delegation saw a large American man stark naked on the floor of the bar yelling, 'I want it now!" A hostess lifted up her skirt and sat on his face. '''It was the same officer who had briefed the delegation earlier in the day.'''” > >적도의 전쟁 지역에 배치된 혈기 왕성한 [[미국인]]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정상적인 문제들 즉 섹스와 술과 광기는 [[비엔티안]]에서 특히 심했다. 이런 문제들은 거의 대부분 '화이트 로즈' 라는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졌다. 이와 관련된 일을 릴리는 생생하게 기억했다. >"간부 요원 한 명이 그 곳을 찾아온 의회 대표단에게 시골 오지의 [[CIA]] 사업에 대해서 브리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의회 대표단은 비엔티안에 있는 화이트 로즈라는 나이트클럽으로 안내를 받아서 갔습니다. 현지 요원들의 실태를 보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이 술집의 무대 위에 덩치가 커다란 미국인 한 명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홀랑 벗은 채로 '지금 당장 하고 싶다아아아!'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여종업원이 스커트를 훌렁 걷어 올리고는 이 남자의 얼굴 위에 앉았어요. >'''그런데 이 남자가 누구였느냐 하면, 낮에 대표단에게 브리핑을 했던 바로 그 요원이었던 겁니다.'''" >-출처 : 팀 와이너,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 해당 이야기는 베트남 전쟁 당시 [[라오스]] 쪽 [[블랙 옵스]]에 투입된 CIA의 이야기를 다루는 파트에서 나오는 일화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미국 측에서 돌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 이런 어처구니 없던 상황 속에서 [[미군]]들이건 [[MACV-SOG|미군과 함께 작전]]하던 [[미합중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건 모두가 다 같이 말 그대로 '''미쳐갔다.''' 헬기 조종사들은 '''맥주에 절어 [[음주운전|음주조종]]을 했고''', 다른 장병들은 술이랑 성매매는 물론 '''[[마약]]'''까지 했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의 매춘부 숫자는 대략 50만 명 정도였다. 1968년 구정 대공세 때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이 54만 명인데, 대략 이와 비슷한 숫자의 매춘부가 남베트남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베트남 정글에는 야생 [[대마]]가 흔했고 미군은 TV 카메라가 촬영하는 가운데서 대놓고 피우기도 했다.(...) 징집되어 베트남에서 싸우던 [[올리버 스톤]]도 이 당시, 마약에 빠져 [[제대]] 후에도 갱생하느라 고생해야 했고, 이 경험으로 [[이라크 전쟁]]이라든지 [[걸프전]]때 미군 파병을 부정적으로 대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알콜중독, 마약중독에 PTSD에 빠진 예비역들이 미국내로 적지않게 퍼졌고 이를 다룬 영화가 야곱의 사다리이다. 당연히 [[1969년]]에서 [[1971년]] 사이에 미군의 환각제 사용자는 5%에서 14%로, [[헤로인]] 복용자는 2%에서 22%로 폭증했다. 더구나 이는 상원위원회의 보고서로, 실상은 이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인데 단적으로 [[1981년]] 미국 통계에 의하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서 '''실제로 싸웠던 군인'''의 25%가 마약류 범죄로 체포되었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덕분에 1971년 미군 야전병원에는 "전투로 부상당한 병사가 5,000명도 되지 않던 상황에서 마약문제로 입원한 환자는 20,000명이 넘었다"라는 엽기적인 기록이 남아있다. 한국군 참전 용사에 따르면, 한국군은 적으로부터 이동 규모를 들키지 않기 위해, 또는 풀밭에 [[지뢰]]가 있을까봐 앞사람이 걸어간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조심스럽게 행군했는데, 미군은 '''마약에 취한 채로 일렬 횡대로 행군'''하는 걸 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1980년대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 장교가 쓴 <그날>이란 책자에서도 일화가 나와 있다. [[대한민국 국군|한국군]] 지원 [[미군]] 헬기 조종사가 거나하게 취한 채로 와서 한국군들도 경악한 일화가 나와 있다. 그래서 그 장교가 영어로 "왜 술을 먹냐?"고 힐난하자 그 조종사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이런 외국에서 개죽음 당하러 왔는데 맨정신으로 버티라구? 이 XX것들아. 네놈들은 여기서 뒤지는 게 좋냐? 좋아?"라고 소리치는 통에 그 장교는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계적으로 헬리콥터, 전투기 조종사는 최소 준위에서 소령급 장교들인데, 그런 계급을 부여받은 자들이 이랬으니 그 밑의 계급은 말할 것도 없다. 참고로 호주군은 알아서 절제했고 한국군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국가적 특성상 외화 유출을 이유로 제한적으로 매점을 이용할 수 있었으나, 당시 미군 PX에서는 마구잡이로 뒷돈을 받으면서 술을 팔아댔다고 한다. 주말 한국군 부대 앞에 술을 살 수 있는 한국군 명의 "구매권"을 현금으로 사기 위해 죽치고 있는 미군들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한국군이 받아볼수 있는 "달러"는 다음의 세 종류가 있었다. 먼저 전시에 작전지역 및 후방지역에서 통용되며 미군 사령부 경리부서의 지시에 따라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군표", 한국군의 달러 사용으로 인한 국부유출을 통제하기 위해 주월한국군사령부에서 발행하며 군표를 사용하게 되면 행보관 등 담당관에게 결제용으로 제출하는 "구매권", 그리고 영내외 어디서도 프리패스로 쓸수 있는 실제 [[미국 달러]]현찰인 "본토불". 그런데 빈번한 작전투입으로 인해 한국군의 구매권 사용이 제한되면서 한국군 입장에서는 결제가 필요한 군표 대신 언제든지 쓸수 있는 달러로 바꿀수 있고, 미군 입장에서는 한국군 명의가 필요한데 이를 싼값에 [[환치기]](...)로 얻을수 있으니 서로에게는 윈윈인 거래였다.][* 당시 한국은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국가가 수입품도 통제]]했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도 한국정부는 조국의 산업화에 일감을 지원해 주기 위해 +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차액을 한푼이라도 더 남겨 보탬이 되기 위해 스테이크, 스파게티 등 양식 위주의 미국제 전투식량을 지원 받는 대신 김치, 장조림과 같은 한식 위주의 전투식량을 한국기업에서 납품 받아 지원해 줄것을 미군에 요구했고 '''끝내 이를 관철시켰다.'''] 한마디로 상명하복의 군기 중심인 한국군은 제한적으로 대대급 보고 수준으로 비번인 부사관과 병사, 장교들의 음주회식을 인가하에 실시하였고 호주, 뉴질랜드군은 참전자들의 수기에서도 보이듯이 "알아서" 절제했다. 하지만 미군은 중,대대장과 선임부사관이 약간 분위기 좋아 보이거나 술을 마시면 병사들은 몰래 술을 마셔댔다. 한마디로 영화에서 보이는 술마시다 상황걸려 뛰쳐나가는 미군의 모습은 가공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1,2차 대전에서도 보이는 진중음주와는 다른데 추위해소, 긴장해소 등으로 홀짝대는 수준이 아니고 분대별로 몰래 술판을 벌이고 마약을 했다. 1,2차 대전 당시는 음주도 일종의 기호이고 남성의 소양이라는 당시 기조 상 프랑스군은 포도주가 보급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술 문제에 의한 기록이나 후일담은 별로 없는데 비해 베트남전의 미군은 술 문제가 상당히 많았다. 현재도 구글을 이용해 참전자 커뮤니티의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벙커 안에서 몰래 먹던 저키(육포)와 맥주 맛은 지금도 잊을수 없다거나 앵그리코맨(한국 해병부대 파견 미해병 연락병. 함포,항공 폭격을 유도함)출신의 참전자가 "k레이션에 김치, 소주를 한국군과 끝내주게 마시는건 연락병들의 특권이다"라며 종종 추억글을 올린다. 판단은 각자가 하도록 하자. 게다가 군인의 기본소양이라 할 수 있는 복장과 장구류 불량도 심각했다. 물론 베트남이 엄청나게 더웠던 것도 한몫 했지만, 문제는 미군이 군복을 제대로 입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맨몸에 플랙 재킷 하나 걸치고 다니는게 비일비재했고, 군장도 무겁다고 버리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총기 관리도 개판이었다고 한다. 특히 전투복 상의의 팔을 잡아뜯어 나시 형태로 만들거나 하의를 잘라 반바지로 만드는 것 정도야 양반이었을 정도. 습하고 오염이 쉬운 정글에서 M16 소총이 자주 고장나자 이를 정비할 생각은 안하고 버리고 다른 총을 줍거나 아예 AK-47을 들고 다니는 병사들도 흔했다. 그리고 마구잡이 징집으로 불량배, 사회부적응자, 술집 기도 등의 사회의 하류층들이 대거 유입됐는데 이들이 군대 내에서 각종 문제를 일으켰으며 이들은 제대 후 미국에서 바이크 갱으로 편입되어 많은 사고를 쳤다. 미국 바이크 갱 서열에는 "SGT. at arms"라는 직책이 있는데 이는 베트남전 당시 부사관급 출신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갱 서열에서 중간보스급을 의미하는 직책이다. 더 나아가 연합군 중 공식적으로 덕 헌터 패턴의 위장복을 입고 온 한국 해병대에게 피복을 돈을 주고 사거나 바꾸어 입고 다니는 육군, 해병대 병사들도 적지 않았고 이를 문제삼는 간부도 별로 없었다. 현재 해병마킹이 들어간 덕헌터 즉 한국 해병대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베트남전 미군들의 사진이 검색되는게 그 이유. 실제로 이 시기의 미군들의 방탄헬멧을 보면 온갖 [[https://www.dogdrip.net/dogdrip/174132083|낙서와 잡동사니로 도배가 되어 멀쩡한게 별로 없는데]], [[담배]]나 [[포커]] 카드를 끼워 놓은건 그나마 얌전한 축에 속하고, '집에 가고싶다.' 같은 평범한 문구부터[* 이 정도까지는 한국군에서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겐 [[리 하비 오즈월드|Oswald]]가 한명 더 필요하다.(Where is Lee Harvy [[브로큰 잉글리시|Oswalt]] Now that we really need him.)'''' 같은 불온문구나, [[위장]] 따윈 개나 준 휘황찬란한 [[노즈 아트]]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한술 더 떠서 장난감이나 염소 뿔(...) 같은걸 끼워놓은 것도 있었다. 전술적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근절해야 했지만 일선 지휘관들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심했다. 기록 사진으로 확인 가능한 지금 시각에서야 낭만이겠지만 이는 심각한 군율위반이다. 오히려 방탄헬멧을 온전히 쓰고 다니는 것은 장교들밖에 없었을 정도. 상술한 상황에 대해서 "군율로 다잡을수는 없었는가?" 라는 의문점을 제기 할수 있지만, 타들어갈 것만 같은 더위, 푹푹 찌는 습도, 미치도록 꼬이는 벌레들, 지천에 널려있는 야생 대마, 빽빽하고 무성한 정글에서 보이지도 않는 적에게 사살 당하는 공포, 수틀리면 뒤통수에 총알이 박힐 것 같은 긴장감은 도저히 군율로 통제할수 있는 성향의 것이 아니었다. 온실 속에서 자라온 사관학교 출신이나 학군후보생 출신 초임장교들은 상술한 공포감에 경도 되어버린 병사들에겐 괜히 일을 재수없게 만드는 귀찮은 상급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신임 소위들이 프래깅에 희생당했다. 감독이 곧 고증전문가였던 올리버 스톤의 영화 플래툰을 보면 이러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신임 소위가 병사들의 포커판에 끼어 친해져보려고 하나 오히려 대놓고 무시당하고 적당히 마시도록... 하면서 멋적게 물러난다. 그리고 선임부사관(반즈 중사)의 눈치를 계속보며 아첨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중에 이 소위는 계속 겉돌다가 작전 중 허무하게 전사한다. 이런 개판 오분전의 상황에서 기강붕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은것은 부사관들의 노력이 굉장히 컸다. 2차 세계대전, 한국전 출신의 노련한 상사나 [[원사(계급)|일등상사]]들이 아직 군에 남아있었고 실전경험 및 군 생활이 풍부한 중사급들이 나름 장교들을 보좌하고 병사들을 통솔하고 눌렀기에 망정이지 이들마저 미쳐버렸다면 결과는 어땠을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작전의 의미가 뭐냐고 밀러대위에게 항명하는 리처드 레이번 일병에게 호바스 상사가 권총을 뽑아 위협하면서 "똑바로 다시 말해봐" 라면서 으름장을 놓는 장면이 있다. 부사관들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베트남전의 대표적인 부사관으로 영화 위워 솔저스에 나오는 바실 플럼리 원사가 있다. 실존인물이며 [[제82공수사단]] 출신으로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마켓 가든 작전]]에서 작전을 수행했고 한국전쟁 때는 [[제2보병사단(미국)|제2보병사단]]으로 참전했다. 영화 상에서 [[M16 소총|플라스틱으로 만든 총]]은 못 믿겠다며 M1911만 들고 정확히 베트콩들을 조준사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화이다. 게다가 [[머나먼 정글]]을 보면 지크 앤더슨 중사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극 중에서 그는 무려 3번이나 베트남전에 자원하여 3년이 넘게 베트남의 고인물로 있었던 인물이다. 극 중에서 그는 웬만한 장교들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이 출중하며 병사들 그 누구도 개기지 못하고 대위급 장교들도 그를 함부로 까지 못한다.[* 다만 앤더슨 중사 역시 PTSD에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었고 이로 인해 이혼까지 당하게 되며 사회에 적응을 못하여 군대에 있었던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게 머니먼 정글에서만의 픽션이 아닌 실제로 이런 부사관들이 미군 내에 상당히 존재했었다는 것이고 철저한 고증이라는 것이다. 또한 [[플래툰(영화)|플래툰]]에 등장하는 일라이어스 하사와 반즈 중사 같이 역전의 용사들의 묘사 역시 고증을 철저히 따른 것이다. '''이런 부사관들에게 어떤 병사가 함부로 개기겠는가?'''[* 애초에 두 사람 모두 [[올리버 스톤]] 감독이 군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이 모델이다.][* 당연하지만 전투에서 살아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런 베테랑 부사관들이 하는 명령을 잘 따르고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여담으로 영화 위워 솔저스가 전쟁 초기, 플래툰이 전쟁 중후기이다. 위워 솔저스에서는 병사들의 전투복이 깔끔하고 군장도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다가 플래툰을 보면 개판 오분전의 복장상태를 보여준다. 이는 영화 고증이 제대로 된 것이며 전쟁 초기의 멀쩡했던 미군과 중후기의 미쳐가는 미군을 제대로 비교해서 볼수 있다. 참고로 당시 연합군으로 참전했던 호주군은 2차대전, 한국전 출신의 노련하고 강철같은 부사관들을 선별해서 파견하여 병사들을 통제, 훈련케 했으며 한국군 역시 일본군 징집에 따른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부터 해서 한국전쟁과 후방의 [[조선인민유격대|빨치산]] 토벌작전과 후방 민사작전을 수행해본 3~40대 부사관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심지어 파월 초기 한국군 지휘부는 사령관 [[채명신]] 소장은 물론 [[https://m.dcinside.com/board/singlebungle1472/324668|영관급 지휘관 전원]]이 [[한국전쟁]]과 빨치산 토벌을 경험한 참전용사였다. 호주군과 한국군이 일정한 군기를 유지할수 있었던것은 이들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한국군은 전매특허인 민사작전(태권도 강습, 모내기 등 대민지원)을 수행하며 지역 주민들의 환심을 샀고 중대전술기지를 축성해서 효과적인 전투를 수행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군의 민사작전 역량은 그리좋지 않고 문을 박살내고 들어와서 총부터 들이대는 미군은 그 어떤 베트남인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미국 경찰이든 FBI도 문을 박살내고 들어와서 총으로 들이대서 제압부터 한다. 오죽하면 [[FBI OPEN UP!|이런 밈]]까지 나올 정도.] 그래서 미군이 베트남 농민들에게 작별인사하고 가는중에 농민으로 위장했던 베트콩들이 작별인사한 미군들을 총으로 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군 특유의 상명하복때문에 마주칠때마다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경례구호에 미군장교들은 한국군 부대를 방문할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이는 윌리엄 딕슨 당시 육군 중위의 수기이며 휴식을 할때도, 작업중일때도 선임자가 일어나 자로 잰듯한 경례를 하고 통역병에게 무슨 보고를 하는거냐고 물어보았는데 저 사람 계급은 병장이고 지금 중위님께 본인 포함 인원수, 현재 작업중 휴식 취하는 것을 보고 하는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왜 우리 군대는 이런 게 안되는가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그린베레는 제외다. 먼저 총으로 위협하지 않으며 현지언어로 대화하고 적성국 문화에 맞춰서 민심을 얻는데 치중하였고 식량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몽족을 포섭해서 군인으로 훈련시켜서 1만명의 전투부대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피닉스 작전으로 인해 사회적 비판을 많이 받게 되었지만.] 당연히 이 사태 이후로는 미군 내에서의 술, 마약, 성욕과 관련된 통제가 강화되었고 수뇌부 측에서는 잘 나아졌지만 병사들 사이에선 해결하지 못했다. 사이공, 하노이, 다낭 좌판에는 싸구려 양주들이 널려 있었고 부패한 px병들은 맥주를 팔아댔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